정비사업 옥죄는 이주비 대출 규제
보도일자 2026-04-20
보도기관 대한경제
정비사업 현장이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가 이주비 대출을 직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초 서울시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세 곳을 제외한 마흔 곳에서 이주비 규제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사업 지연과 사업성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이 확인되었다. 당장 약 삼만 호에 달하는 주택공급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비사업은 태생적으로 이주 절차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기존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사업이기에, 조합원과 세입자 모두 공사 기간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실거주 조합원은 이주할 곳의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고, 임대를 주고 있는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 이주비 대출은 바로 이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정부가 HUG를 통해 운영하는 정책보증 상품이다. 주택을 사기 위한 투자 자금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현행 규제는 이 대출을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대출 및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며 투기과열지구에는 LTV 40%가 적용되고, 2주택 이상 보유자는 대출 자체가 전면 금지됐다. 전세자금대출 한도까지 축소되면서 1주택 보유 조합원이 이주 목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6억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최근 수도권 전세금이 급등한 상황에서 이 금액만으로는 이주 자체가 어려운 곳이 속출하고 있다.
이주비 부족의 파급효과는 연쇄적이다. 이주 절차가 지연되면 착공이 늦어지고, 그 기간 동안 막대한 금융비용이 발생한다. 조합원 천 명이 평균 6억원을 연 4% 이율로 대출받았다고 가정하면, 사업이 1년 지연될 때마다 이자 비용만 약 240억원이 추가된다. 기본이주비로 부족해 시공사를 통해 추가이주비를 조달하더라도 금리가 크게 높아져 소유자의 실질 분담금이 늘어나고, 공사비 협상에서 조합의 협상력이 약화될 수도 있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 규제가 사업성이 열악한 곳일수록 더 큰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비핵심 지역의 정비사업은 시공사의 재무 여력과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아 추가이주비 조달에 대한 협조를 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받더라도 리스크가 높게 평가되어 조달 금리가 크게 올라간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추가이주비 금리가 10%로 제안된 곳도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강남권 등 우량 사업장만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비우량 사업장은 사업이 크게 지연되거나, 이주비 조달 부담으로 인해 시공사 입찰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수요 차단이라는 정책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투기과열지구 지정과 토지거래허가제가 이미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업 추진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이주비 규제까지 유지하는 것은 과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비 대출을 가계 주택담보대출이 아닌 별도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총량규제에서 제외하되, 대출 상환 전까지 추가 주택구매를 금지하는 방식이면 당국이 우려하는 투기 수요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 주택공급의 핵심 통로인 정비사업을 옥죄는 규제는 결국 시장 불안을 더 키울 뿐이다. 사업은 수월하게, 추가 주택 구매는 못 하게 하는 실용적 전환이 시급하다.